지금으로부터 3800년 전에 살았던 인류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된통 바가지를 쓴 손님이 끓어오르는 부아를 주체하지 못하고 폭발시킨 감정의 발로였던 셈이지요.
기원전에 살았던 사람이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든, 바라는 것이나 고민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비슷비슷한 고민들을 품고 경험하기를 부단히 반복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먹고살 고민’을 말끔히 해소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래의 목적과 계획은 일단 잊고,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에 열중하라”고 조언합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이 기우는 작업에 온 힘을 다하고 보람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는 사람. 세상은 이런 사람을 수수방관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의 아우라를 알아보는 이가 나타나 기꺼이 새로운 과제를 맡길 테니까요.
현대인은 종이 위에 선을 그어 시간에 구획을 짓고 ‘공간적’으로 관리합니다. 이때부터 이때까지는 시간이 비었다는 둥, 돌아오는 화요일 저녁에는 일정이 있고 목요일 오전부터는 일정이 없다는 등
시간에 쫓겨 자아를 상실할 것 같다면 잠시 하던 일을 내려놓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 날만큼은 아무 목적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읽고 싶은 책이나 보고 싶은 영화들을 섭렵하고 미지의 흥밋거리를 찾아 자유로이 배회할 수도 있겠죠. 그러다 보면 참신한 아이디어가 불쑥불쑥 떠오르게 됩니다. 그저 기를 쓰고 달려들던 때와 달리, 재충전을 하면서 현재 하는 일을 두루 굽어보며 새롭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남이 걷지 않은 길을 걸어 나가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남과 다른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마주합니다.
인간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도록 만드는 엔진은 돈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베버는 근면 성실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동기를 돈이 아닌 다른 가치에서 발견했습니다. 그 엔진은 예정설과 같은 장대한 서사가 아닌, 바로 우리가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개인의 서사라는 것이죠. 지금껏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온 내밀한 서사 말입니다.
유년 시절부터 줄곧 시달려왔던 타인에 대한 열등감, 과거에 자기를 업신여겼던 타인에 대한 복수심, 자신감 결여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다든지, 남다른 취향이나 적성을 가지고 있다든지 저마다 마음속에 품고 있는 서사는 천차만별입니다.
‘갖가지 학문 분야에서 올바르게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그의 대표작 《방법서설》의 골자를 이루는 네 가지 방법입니다.
첫째, 명료하게 참이라고 인정한 것 외에는 어떠한 것도 참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명징의 규칙.
둘째, 차근차근 단계를 밟으며 자신의 사상을 이끌어 나가라는 총합의 규칙.
셋째, 아무것도 빠뜨리지 않았다고 확신이 들 만큼 완벽한 열거와 전반적인 검토를 어디서나 행하라는 열거의 규칙.
마지막으로 넷째, 분할의 규칙입니다.
스트레스 연쇄를 유발하는 중독성 짙은 직장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진정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향해 마음가짐을 신속히 전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르트르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다한다”는 실존주의 철학을 본인의 인생을 통해 충실히 실현해냈습니다. 소설가, 극작가, 비평가, 저널리스트, 사회 운동가에 이르기까지 전방위적으로 에너지를 쏟아부어 행동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행동력을 고취시킨 원동력은 다름 아닌 외모 콤플렉스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니체가 주장한 영원 회귀 사상입니다. 불행한 경험이 없으면 행복한 추억도 생겨나지 않는 법이지요. 양쪽이 공존하는 덕분에 인생은 괴로우면서도 즐겁습니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희망과 절망 사이를 거듭 오가는 가운데 인생을 사랑하고 기꺼이 즐길 수 있습니다. 이같은 인생의 원리를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은 현재에 충실할 수 있으며, 순간을 영원처럼 살 수도 있겠죠.
밀의 이론에 따라 눈앞의 유혹을 견디고 목표를 달성했던 다른 경험을 떠올리면 됩니다. 살면서 눈앞의 달콤한 유혹을 이겨냈던 순간들과 그때 느낀 자부심을 떠올리며 오늘 밤 당신에게 들이닥칠 달콤한 유혹을 단호히 물리쳐보면 어떨까요?
이상하다 싶으면 이상하다고 말하고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것. 푸코가 말년에 사유의 핵심 개념으로 삼았던 ‘파레시아parrhesia’와 일맥상통합니다. 파레시아란 감추지 않고 진실을 말하는 용기입니다.
따돌림 때문에 너무나도 고통스럽다면 죽음을 생각하기보다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와야 자기 자신을 구할 수 있습니다. 고통을 떨쳐내고 끊어내며 ‘나는 가치 있는 존재’라고 자존감을 회복할 때까지 나만의 안식처에서 스스로를 보듬으며 하루하루 살아나가야 합니다.
'Grew from > Book-Memo'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메모] 적당히 가까운 사이 (0) | 2021.03.09 |
---|---|
[북메모] 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만 남기기로 했다. (0) | 2021.01.01 |
[북메모] 1일 1분 정리법 (0) | 2020.10.24 |
[북메모] 단순함의 법칙 (0) | 2020.10.06 |
[북메모] 읽어야 풀리는 수학 (0) | 2020.08.02 |